미국 총기문제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총기문제는 고질적이며 사회적인 병이다. 특히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누구나 다 통용하는 사회적 이슈이다.
얼마 전, 뉴욕주 마트에서 벌어진 인종주의적 총기 난사 사건이 끝나기도 무섭게 텍사스에 한 초등학교에서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몇 주가 채 지나지도 않아, 시카고 근교에서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한 퍼레이드 중에 무차별적인 총기 난사가 또 발생했다. 많이 이들이 그 자리에서 희생되었으며 미국 사회 전체가 절규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이 불변성. 마치 대한민국 교육이 결코 바뀌지 않는 것처럼, 미국 사회의 끊임없는 총격 사건은 지금도 버젓이 존속되고 있다.
환멸과 신물이 난 이 미국 사회 내 규탄의 목소리와 다양한 움직임이 결국 총기규제법을 상원에 통과시켰다. 이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많은 생명을 구할 것" 이라 언급했다.
그러나 정작 그 규제법을 훑어보면 굉장히 형식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총기 구매 과정에서 그 절차를 조금 더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령, 총기 판매자에게 구매자의 신원 조회를 의무화시키고, 총기 밀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거나, 본인이나 타인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된 사람으로부터 총기를 압류한다는 것이다. 결국 다시 한번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총'의 입지와 존재는 이 규제로부터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이 총은 마치 허울만 좋고 그들이 규제라고 참칭하는 것들을 보며 비웃고 있을 뿐이다.
근본이 살아 있는 한 말초와 파생적인 모든 것은 어떻게 서라도 부활하며 복구된다.
내 생각에, 미국은 총기 전면금지 라는 근본적인 접근에 다 가기에 너무 먼 길을 떠났다고 본다. 근본과 말초의 간격은 역사와 사회의 고착된 인식에 더더욱 멀어진다.
총으로 일어난 나라 그리고 카우보이와 같은 총이 미화되며 오히려 합리화되는 또 다른 인간들의 세계 미국. 미국인 중 대부분은 총이 자신과 가족을 지켜주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수단이라 믿는 습성이 있다. 그들에게 미국 사회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모든 총기사건은, 정신질환을 가진 한 개인인 버린 사건으로 치부된다. 즉 사회적 사건이 아닌 개인적 사건으로 규정하며 주장한다.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규제. 총기에 대한 미국 시민의 가치관. 이 두 가지 뒤에 총기 소유와 구매를 합법화 하고 이러한 문화를 증진하는 또 다른 세력이 있으니 그것은 NRA(National Rifle Association) 이다. 이 총기 협회의 입김은 너무나 강력하여 미국 정치계와 경제계를 흔들 수 있는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판 정경유착 그리고 수많은 로비가 NRA라는 거대한 조직에서부터 탄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RA 또한 총기옹호론자와 마찬가지로, 모두 다 총기를 소유하여 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자는 총기 절대주의를 사회에 설파한다. 이로써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의 황폐화와 혼돈을 희생시킴으로써 또다시 값진 승리를 쟁취한다. 공과 생명보다는 자본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그리고 그 속에 생존하려고 하는 개인들의 발악.
그것을 간파한 여러 식자층과 시민단체 그리고 깨어있는 개인들이 미국 총기소유 반대를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는 단언컨데 결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기서 개인에게 총은 꼭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던져 볼 수 있다. 내 대답은 언제나 아니다로 귀결된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이 아니라, 그 총의 방아쇠를 당긴 사람일 것이다. 단지 그 사람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수월하고도 강력한 그리고 가장 확실한 총을 사용한 것이다. 총알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격발되는 총알이 목표물에 닿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찰나와 같다. 너무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에, 총은 어떤 것을 물리적으로 제압하거나 살상하는 데 최적의 도구이다.
총기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너무나 쉽게 그리고 짧은 시간에 다수 목표를 타격할 수 있다는 총기의 대량살상 능력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큰 노력과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즉, 언제 어디서 빠르게 저항과 몸싸움을 동반하지 않고도 상대를 쏘고 쓰러뜨릴 수 있는 무기인 것이다.
상대방이 죽었으면 하는 그 마음과 심리,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어떠한 동기와 이유는 사실 굉장히 복합적이면서 사회적인 문제임이 농후하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대개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된다. 사회를 보지 못하고 그 개인만 추궁하는 이러한 미국의 편협한 습성은 지도자도 마찬가지이고 대부분의 대중도 그렇다.
아마, 총기 전면규제 혹은 총기소유불법화를 하는 것보다 사회를 교육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빠를지 모른다. 미국은 어떠한 현상이 일어난 후 그것을 수습하고 대안을 세우려는 사회이다. 총기문제도 그것 중에 하나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고 그것의 근원을 찾으려고 하는 시도가 필요하겠지만, 이마저도 쉽게 되지 않는 듯하다. 모르겠다. 미국 사회의 많은 지식인과 석학들은 이러한 미국의 끔찍한 사회 현상을 보고 어떠한 마음을 갖고 책임감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들은 여태 한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총기를 바라보는 미국 시민들의 의식을 바꿀 수만 있다면, 총기전면규제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사회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으로 이루어진 실재 이므로, 그 각 개인의 의식이 사회의 변화를 이루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 이것은 누구나 통용할 수 있는 보편적 사실이다. 사회의 구성원이 응집하여서 한 목소리를 표출한다는 것, 이것은 어떠한 것도 막을 수 없다. 정치가, 기업가, 심지어 종교인까지. 그 군중의 집단이 크면 클수록 더욱 효과적이다.
그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방법은 굉장히 단순한 것일 수 있다. 바로 교육이다. 교육은 인간의 의식을 작동시킨다. 이를 이용하여 의식을 전환 시키는 것, 보통 사회화라고 하는 것은 특히 제도권 교육의 가장 궁극적인 역할이다. 총기 문제를 해결하기 하기 위한 대중 의식의 전환은 절대적으로 필요충분조건이다. 그것을 이루는 데에 가장 가능성이 큰 장치는 교육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듯 하다.
이제 그 교육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할까? 그것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교육을 누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과 교사가, 시대가 요구하고 사회에 필요한 새 교육을 먼저 학습하고 소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새 교육의 총체성은 이처럼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선생들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함을 뜻한다. 선생들은 새로운 교육의 내용과 함의를 파악함으로써, 어떠한 방식과 접근으로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전파할 것인가라는 일종의 방법론을 확립할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 총기 제로 사회를 만드는 데에 있어 교육은 그 어떤 것보다 포괄적이며 근본적인 접근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의식' 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의미 있는 움직임은 성공 실패를 떠나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실패함으로써 교육의 맹점을 파악하고 수정하여 다시 그것을 새롭게 구성해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
SNS와 여러가지 대중 매체들을 활용하는 것도 참신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학교보다 인터넷과 대중매체들에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그것으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는 현대사회 그리고 젊은층들에게 SNS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 어떤 것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의 의식을 전환하고 끌어 모음 이라는 목표에 SNS이라는 수단을 이용하는 취지는 너무나 이상적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의 시작은 총기소유를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의식을 형성할 수 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의식의 거대한 에너지가 사회에 영향을 미쳐 변화를 이루는 데에 지대한 이바지를 할 것이다. 그 핵심에는 바로 교육이라는 장치가 작동한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필요한 교육이 발견되어 사회에 전개되게까지 미국이란 사회에서는 지속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총기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희생자는 계속 산출될 것이고, 사회는 더욱 분열되어 혼돈에 빠질 것이다.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이 통탄을 금치 못하는 사실이 자연의 이치라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 드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총기사건으로 얼룩진 미국 사회를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강구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밖에 없다. 오직 필요한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미국 사회에 그 교육을 개진할 것인가? 가 핵심이라는 점을 인지하여야 한다.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이 그동안 역사적으로 미국에 진 많은 빚을 갚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도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