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각자가 원하는 세상 그리고 사회에 대해 꿈꿔온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꿈이든 아니면 한낱 간절한 소망이든 간에 말이다. 꿈의 사회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회이다. 시간과 필요성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요행 심리와는 거리가 있다. 즉, 우리가 고민하고 노력하여 사회와 세계의 변화에 주체가 되자는 뜻이다. 따라서, 꿈의 사회는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전부의 몫이며 책임일 수 있다.
꿈의 사회라는 의미는 누구나 각자가 하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일을 그 어떤 제약과 억압 없이 할 수 있는 사회이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나의 소득이 되어 돈에 노예가 되지 않는 사회이다. 월급과 연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며 우리의 영혼을 팔지 않아도 된다. 결국, 하기 싫은 일에 하고 싶은 일을 희생 할 필요가 더는 없어진다.
꿈의 사회는 돈과 물질을 최우선으로 두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며,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고 사적 소유물을 타파하려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 또한 아니다. 꿈의 사회는 철저히 인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며 사람이 근본이 되는 사회이다. 다시 말해, 인본주의의 사회라고 말 할 수 있다. 여기서 인본주의는 기존 서양의 시각에 입각한 인본주의와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서양이 바라본 인본주의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모든 것은 인간이 지배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인본주의는 말 그대로 사람이 근본이 되며,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하고 상생하여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자 동시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의 인본주의의 기본적인 속성이 '지배'와 '정복'이라면, 대한민국의 인본주의는 '상생'과 '공존'에 있다.
꿈의 사회는 전쟁이 없는 사회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테러, 폭탄, 총격에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며, 누구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자기의 하루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회이다. 더 이상 사회 구성원은 직장이나, 학교, 쇼핑, 또는 여행지를 가는데 있어 방탄복이나 권총 무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
꿈의 사회는 모멸감 제로의 사회이다. 현대 사회 구성원들은 모멸감 또는 열등감을 가슴 깊이 내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직장인이든, 지식인이든, 학생이든 말이다. 하지만 꿈의 사회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에 있어 그 어떤 제약과 억압을 받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 앞에서 의도적으로 굽힐 필요도 없고 '싸바싸바'를 할 필요도 없다. 이 말은 남들을 무시하거나 남들에게 무시 당할 기회 자체가 소멸한다는 뜻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사회의 권위주의와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사회적 갈등들이 자연스럽게 소해 되고 소멸된다.
꿈의 사회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사회이다. 신분, 계급, 국적, 나이, 성별, 학력, 지위와 상관없이 배우려고 하는 마음만 있다면,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지식, 기술, 소양을 쌓을 수 있다. 그것이 제도권 교육기관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제도권 밖 교육기관에서도 일어날 수 도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온라인으로 다양한 자료를 무한정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누리는 데에 있어 사용자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없다. 대학교와 대학원 그리고 특수학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배우려는 마음과 자세를 갖고 어떠한 것을 탐구하고 연구하고자 한다면, 거기에 필요한 경제적 물질적 부분들을 학자금 그리고 생활비로 지원받는다. 따라서 학생들은 학비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방과 후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을 하지 않아도 되며, 수 천만 원 하는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된다. 꿈의 사회에서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무상교육과 생활비 지원이 국가의 경제적 재정적 손실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투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꿈의 사회에서는 입시제도 자체가 없고 대학 간의 서열도 없다. 그 대신 학생의 생각과 주관을 점검하는 고등학교 졸업시험만 있을 뿐이다. 이 시험에는 학생의 사유능력 뿐만 아니라 인간성을 주요한 요소로 평가한다. 점수와 상관없이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학생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 그리고 원하는 때를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동안의 교육이 단순한 지식을 쳐 넣는 것에만 몰두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암기를 잘한 학생을 우등생이라 칭했다면, 꿈에 사회에서는 얼마나 자기의 생각을 효과적이고 뚜렷하게 표출하여 남을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더 나아가 타인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이해심과 공감 능력을 얼마나 가졌는지에 따라 뛰어난 학생이 된다.
2022년,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수백 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또한 지속되고 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는 하루가 멀다 발생하는 총기사건과 증오범죄로 끊임없이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전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자국의 국민이 발사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이러한 폭력과 혼돈의 현실에서 꿈의 사회라는 단어는 막연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상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이상을 곤두박질 치는 순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동물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상이 하나 쯤 있을 것이다. 그것이 첫 집을 구매하는 것일 수도 있고, 원하는 회사에 취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학생에게는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이상이 될 수 있다. 그 이상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우리의 삶과 현실을 지속시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이상일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는 꿈의 사회라는 이상을 가슴 깊숙이 열망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현실이라는 혹독한 상황의 연속에서 그 이상은 무뎌졌고 결국에는 우리 내면 어딘가에 방치되어 도외시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이상은 소외된 것이지, 소멸한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얼마든지 다시 되찾을 수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을 자각하고 소중히 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순간, 우리는 꿈의 사회에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결코 이상주의자가 되자는 성격의 정언명령이 아니다. 다만 이것은 이상을 잃지 말자는 의지의 표출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지혜롭게 받아들이자 라는 말이다. 세계적인 격변의 시대에 대전환의 움직임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의해 전개되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 속에 주체인 우리가 있다. 변화라는 거대한 물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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